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 글

슬픈 어버이날

by 박철우 2012. 11. 23.
반응형

 

새끼들에게 먹일 먹이를 물고 있는 어미 박새

2007.5.21. 원주 소초면

둥지를 떠나 독립하려는 아기 박새

2007.5.24. 원주 호저면

 

지난 54, 학교 1층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던 중 어디선가 아가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작년에 딱새가 둥지를 틀고 무사히 번식에 성공했던 그 장소에서 뭔가 수상한 소리가 나는 것임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올 해도 새가 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어떤 녀석이 아가들을 저리 열심히 키우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길게 느껴진 지루했던 회의가 드디어 마무리되고 다들 자리를 비운 뒤, 나는 에어컨용으로 뚫어놓았던 구멍(그 위에 흰 종이를 붙여 놓았다.)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았다. 예상대로 작은 새의 둥지가 그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생명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 구멍을 드나드는 새를 관찰하여 그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학생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호기심과 장난으로 인해 이 작은 생명들의 무사를 보장할 수 없는지라 학생들이 하교한 후에 혼자 비밀리에 확인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이들이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간 뒤 조용해진 교정에서 드디어 둥지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에 작은 애벌레를 물고 들키지 않으려고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쏜살같이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는 녀석이 있었다. 박새였다. 흔한 새였지만 사람에게 의지하여 자식을 키워내는 신통한 녀석으로 입구를 막아놓았던 작은 벽돌 틈으로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고 들어가면 아가 새들은 일제히 작은 입을 크게 벌리고 짹짹 소리를 내며 배고프다 보채겠지? 그 모습은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고 예쁠 거야.’

나는 아가 새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웠다.

 

둥지의 주인을 확인한 후 다시 실내로 돌아와 회의실 벽 구멍을 막아놓았던 종이를 살짝 들추고 확인해 보니 이제 막 눈을 뜰까 말까한 녀석들이다. 부화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까? 둥지를 떠날 만큼 조금 더 크게 되면 그 때 이 녀석들의 모습을 제대로 기록하리라, 나는 사진 기록도 하지 않은 채 아가 새들이 둥지를 떠날 날짜를 계산해 보며 집으로 발을 돌렸다. 5월 중순쯤은 되어야 녀석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58일 어버이날. 학급에 조회를 하려고 막 들어선 순간,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행정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바로 회의실로 가보란다.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고…….

 

문을 열고 들어선 회의실은 통화 내용 그대로였다. 에어컨용 구멍에서 1미터 남짓 떨어진 회의실 바닥에는 아가 새들의 포근한 보금자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그 안에 8마리의 작은 생명들이 꿈틀대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누군가가 회의실 밖에서 도구를 이용해 구멍 속의 보금자리를 고의로 밀어 회의실 안으로 떨어뜨린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학생들 중에 누군가가 장난을 친 듯 하였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어미 새가 회의실 책상 밑에 숨어 꿈틀대는 새끼들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아가들이 너무 어려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잠시, 일단은 해결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들통 난 둥지는 위험하여 녀석들을 다시 데려다 놓을 수 없으니 안전한 곳으로 위치를 옮겨 임지 둥지를 만들고, 어미 새에게 기억시켜 새끼들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학생들의 손을 타지 않는 장소를 선택해야 했고, 천적들을 피하기 위해 아가 새들이 노출되지 않는 장소여야 했다. 또한 그 장소를 어미 새가 알도록 해야 했다.

 

일단은 사람을 피해 바닥 여기저기를 오고가던 어미를 조심스레 포획했다. 또한 창고에 가서 임시 둥지를 만들기에 적당한 오래된 나무 박스를 찾아냈다. 예전에 사용했던 건의함인데 재질과 구조가 인공 새집과 같았고 크기도 적당했다. 우선 어치나 까치 같은 큰 천적 새들은 막고 작은 어미 박새의 몸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입구에 원형의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리고 헝클어진 둥지를 추슬러 아가 새들과 함께 나무 박스에 넣어주었다. 또한 포획한 어미 새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놀란 어미 새는 창문 밖으로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갔다.

이 장소를 잘 기억하고 다시 돌아오라는 부탁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했으니 잘 알아들었겠지?’

 

나름 발 빠르게 조치를 취했다 생각했으나 시간의 경과 속에 안타깝게도 두 마리의 아가 새들은 이미 몸이 경직되어 싸늘해졌다. 결국 움직임이 있던 다른 아가 새들에게서 분리하여 뒷산 언덕에 나란히 묻어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했던 상태였는데, 이제는 영영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나름 고민하고 실행했으니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더 이상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놀란 어미가 마음을 진정하고 옮긴 위치로 다시 찾아와 주기를, 충격과 배고픔 속에 몸부림치던 아가들이 그때까지 잘 버텨주기를 기도하는 일밖에는.

 

 

 

 

그러나 모든 상황은 나의 바람대로 그리 낙관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미 새는 찾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아가 새들은 충격 때문인지 굶주림 때문인지 모두 싸늘하게 경직되어 죽어있었다. 나는 먼저 간 아가들을 묻은 장소로 다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밤새 회의실 바닥에서 울며 떨었던 어미와 여덟 마리의 아기 박새들, 이 작고 연약한 생명들에게 인간이어서 진심으로 미안했다. 결국 2년째 작은 새들의 보금자리로 활용되던 회의실 에어컨 구멍을 막았다. 또 다른 생명이 이곳을 보금자리로 정했다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 되는 일이었기에…….

 

오늘은 생명 존중의 교육, 공존의 교육, 생태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슬픈 어버이날이다.

 

 

 

 

 

 

 

반응형

'이런저런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스토리를 시작합니다  (0) 2012.04.15
원주천을 생명의 하천으로  (4) 2012.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