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 글

원주천을 생명의 하천으로

by 박철우 2012. 4. 14.
반응형

2006년 4, 새를 좋아하는 탐조인(bird-watcher)들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원주천 상류와 중류 사이 하천 자갈밭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2급인 흰목물떼새가 번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포란 시기부터 부화까지 한 달 남짓 진행된 흰목물떼새의 번식을 기록하고 관찰하며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 고장을 가로지르는 원주천의 환경이 생생히 살아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고향은 아니지만 원주천의 역할과 중요성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탐조를 위해 다시 찾은 2008년 원주천의 물떼새 번식 구간은 커다란 공사 트럭과 굴착기의 엔진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하천과 그 주변은 자연형 하천공사로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떼새 번식 구간 탐조는 당연히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송두리째 파괴되어 버린 서식지에 녀석들이 머물며 번식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를 보러 나갔다가 정작 새는 못 보고 파괴된 서식지와 하천변에 세워 놓은 원주천 자연형 하천 조성이라는 푯말만 노려보고 돌아왔다.

 

멸종위기종이란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인한 주된 서식지도래지의 감소 및 서식환경의 악화 등에 따라 개체수가 현저하게 감소되고 있어 현재의 위협요인이 제거되거나 완화되지 아니할 경우 멸종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야생 동식물이다. 그렇기에 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위기종의 서식지는 보존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나의 눈에 비친 오늘의 원주천은 보존이 아닌 서식지 파괴 현장이었다. 원주천 주변에서 관찰되는 흰목물떼새나 꼬마물떼새의 경우, 주로 돌과 자갈이 깔려있는 하천변에서 서식을 하며 번식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하천변의 자갈밭은 물떼새들에게 있어 정말 귀한 장소이고 훌륭한 보금자리가 된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공간이 야생의 생명들에겐 중요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자연형 하천이라면 무엇보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의 흐름대로 흘러가야 하며 다양한 식생과 생물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원주천을 정비하며 하천 바닥을 다 긁어내고 주변의 환경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것은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가 아니라 원주천 파괴 공사가 될 가능성이 많다. 하천 양옆에 전석을 쌓고 영산홍이나 창포 같은 꽃과 나무를 심는 것은 눈요기 식의 형식적인 하천 조경일 뿐 진정한 의미의 자연형 하천이 될 수 없다. 자연은 스스로 자연을 만들어낸다. 인위적으로 간섭하고 조정하는 것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하천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가급적 훼손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설계하고 공사해야 할 것이다. 본래의 하천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야생 동식물들의 서식 환경을 고려하면서 인간과 더불어 숨 쉴 수 있는 친근한 자연 하천이 되도록 공사할 수는 없었을까?

  

씁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열어 보니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원주천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를 비판하며 꼬집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면을 빌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원주시와 관계자 분들께 말씀드린다. 원주천을 생명이 살아 숨쉬는 하천으로 제대로 바꾸어달라.

 

위 글은 ()21세기정책연구소에서 발행한 [원주 2008]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하천 자갈밭의 흰목물떼새 둥지와 알

이제 막 부화한 흰목물떼새 아가

자연형하천 공사 구간 

공사 완료 구간 

호우에 힘없이 무너져 떠내려간 전석들. 자연형하천의 실체

반응형

'이런저런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어버이날  (0) 2012.11.23
티스토리를 시작합니다  (0) 2012.04.15